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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중년의 어학연수] TENANCY AGREEMENT

by 다락방

외국에서 집을 구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,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.

집주인도 외국인, 중개인도 외국인이라, 당연히 우리 사이에 대화는 외국어, 즉 영어로만 이루어져야 했다. 나는 이곳에 영어를 공부하러 왔고, 영어 실력이 좋지는 못하다고 미리 밝히면서 대화를 했는데, 대부분 다 '너 충분히 잘 하고 있다'고 해주었지만, 집 계약에 있어서 이해하고 계약서에 서명하기 까지는 상당히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. 이해하지 못해서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하거나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는 일이 몇차례 반복되었고, 계약서는 챗지피티를 통해 번역해 보았다. 집주인 부부 두 분과 중개인 한 분과 집을 계약하는 날, 서명할 것이 계약서뿐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 몇차례 서명을 하고 번역을 하고 되묻고 확인하면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시간이 흘렀다.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40여분쯤 되었을 때었나, 그 때부터는 집중도 잘 안되고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'아, 어서 빨리 이들이 돌아가고 나 혼자였으면 좋겠다, 혼자 남고 싶다' 하는 생각이 너무나 간절해졌다. 그래서 모든 대답에 yes, yes 라고만 해야했다. 알았어, 알았어, 제발 좀 가, 나 혼자 있고 싶어!! 하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얘기했던지.


한시간 좀 넘어 그들이 모두 돌아갔고 드디어 나 혼자 남았다.

나는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지만, 지금은 주저앉을 때도, 울 때도 아니었다.

당장 집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야했다. 당연히 쇼핑몰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당장 급한 것만 사자, 하고는 쇼핑몰로 갔다. 지하에 큰 마트가 있었다.

당장 밥 해먹을 쌀을 샀고 김치를 샀다. 그리고 수세미와 주방세제를 샀다. 일단 이것만 사서 돌아가자, 하고는 집에 가 밥을 해먹었다. 싱가폴에 와서 일주간 호텔생활을 하며 밥을 사먹었는데, 가난한 유학생으로서 사먹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, 매번 사먹는 것이 너무 싫기도 했더랬다. 드디어 밥을 해먹을 수 있다, 만세!!


그렇게 나의 싱가폴 홀로살기 첫 식사는 그래서 이렇게 초라한 밥상이다.

밥과 김치,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김!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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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에, 이게 얼마나 좋던지!


게다가 내가 구한 집은 12층에 위치해있어서 뷰가 너무나 좋다.

매일 아침이나 오후에 아름다운 뷰를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, 잘 때 바깥이 칠흑같은 어둠이 아니라는 게 정말 너무나 좋다. 나는 도시의 소음과 도시의 불빛을 좋아하고 안정을 느끼는 편인데, 외국에서 혼자 살면서 밤에 혼자 자는게 무섭지는 않을까, 걱정했지만, 도시의 불빛이 나를 안심시킨다. 나는 매일 커텐을 다 걷어두고 넓은 창을 통해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다 잠든다. 도시의 불빛속에서 잠드는 것은 하나도 무섭지 않고, 침대에 누워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때마다, 나 역시 이 집에 살기를 잘했다고, 나 지금이 너무 좋다고 매번 생각한다. 그리고 내 생각보다 더 잘 잔다.


주저앉아 울고싶었던 시간이 지나고나자, 도시의 불빛 속에 잠드는 시간들이 찾아왔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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